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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화 대별왕의 나라

yuribada75 2023. 4. 22. 07:42


- 그러자. 천지왕은 그의 의지를 높이 산 건지 아니면 그의 징계를 다른 이에게 남겨 둔 것인지는 모르지만 다시 두건을 회수하여 옥황으로 돌아가려 했다네요. 그런데 옥황으로 돌아가는 길에 백주의 땅에서 이주하여 온 백리부인의 집에 들어가 하룻밤을 유하게 되었대요. 그런데 밤중에 옥빛으로 머리 빗는 소리를 듣고 누구인지 백리부인에게 물으니 자신의 딸이라고 하더래요. 그런데 그 딸을 보니 월궁 선녀처럼 너무 아름다웠다고 해요. 그래서 천지왕은 그 딸을 배필로 삼아 사흘을 지냈다네요. -

' 하하하. 대충 알겠다. 영계나 인간계나 남자들은 예쁜 여자에게 푹 빠진다. 천지 왕도 다를바가 없는 남자인거다. '

- 그렇게 사흘이 지나 천지왕이 옥황으로 돌아가려 하자 딸은 물었대요. 자신은 어떻게 살고 자식을 낳으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그랬더니 천지왕은 아내가 된 백리부인의 딸에게는 박이왕이 되어 인간 세상을 다스리고 자식을 낳으면 대별왕과 소별왕으로 이름을 지으라고 했데요. 그러면서 박 씨 두 방울을 주고 정월 축일에 심으면 아들들이 자신이 있는 곳에 올수 있다고 했대요. -

- 그 후 16살이 된 아들들은 박 씨 줄기를 타고 옥황으로 올라가 천지왕을 만났대요. 그리고 증표로 얼레빗과 붓과 실을 보이자 천지왕의 아들임을 확인해 주었다고 해요. 그 후 다시 그들의 마을로 내려왔고 이승과 저승! 쉽게 말해 인간계와 영계의 마을을 두고 경쟁을 했다고 해요. 둘 다 인간계를 가지기를 원했으나 대별왕이 소별왕에게 양보했다네요. 사실 대별왕이 소별왕보다 지혜도 더 뛰어났고 생명의 힘도 훨씬 강했다고 해요. -

- 그래서 인간계는 소별왕이 다스리고 두 개의 태양이 뜨는 영계는 대별왕이 다스리며 나라를 세우니 그것이 대별국이라네요. 여담으로 소별왕이 수명 장자를 능지처참하고 동아시아 지역 최초의 법을 세운 나라를 건설했다네요. 물론 나라라고 말하기에는 작은 마을 수준이었지만... -

- 대별왕은 영계 두 개의 태양의 땅에 나라를 세우고 법을 만들며 이상향의 나라를 세우고자 했고 인간계에서 넘어오는 이들을 세운 법에 따라 심판했다고 해요. 그리고 대별국을 따라 영계 나라들이 나름에 법과 질서를 세워 영계와 인간계를 조율했다고 해요. 그러다 어느 날 대별국과의 영계 세계수의 길이 끊어졌고 왕래를 못하게 되었다고 해요. 그래서 대별국은 영계에서도 전설처럼 전해지는 나라라고 하네요. -

' 와.. 그런 거였어? 내가 지금 영들도 못 가본 곳에 온 거야? 진심으로 개 신기하네. '

- 아... 대충 알겠어요. 이제 들어가 봐야겠네요. -

- 잠시만요. 멈추세욥! -

나는 걸음을 옮기려다가 멈춰 섰다.

- 아니 왜요? -

- 혹시 회색 길이 아직 남아 있냐고 물어보시는데요? -

나는 뒤를 돌아봤다. 아직 흐리긴 하지만 회색 길은 유지되고 있었다.

- 네. 아직요. 조금 흐리긴 하지만 아직 유지되고 있어요. -

- 그러면 들어가지 말고 기다리래요. 할아버지도 가시겠다고... -

- 네? 어떻게 오신다는 건지? -

- 동방명씨 집으로 갔다가 거기서 회색길로 가면 될 것 같다고... 조금만 기다리시래요. -

' 헐... 그런 방법이. 영계에서 직접 가는 길은 없어도 우리 집에서 시작되는 회색 길은 있으니 우리 집을 경유해서 오겠다는 거구나. 천잰데? '

할아버지는 영계로부터 나의 집으로 연결된 길로 와서 거기서 다시 대별국으로 이어진 회색길로 오시겠다는 것이다. 내가 온 이 회색 길은 나에게만 열리는 길이기에 어느 시점이 되면 사라진다. 그래서 사라지기에 빨리 오시려는 것이다.

잠시 기다리니 회색 길을 따라 할아버지가 헐레벌떡 뛰어오셨고 그 뒤를 따라 시족과 오색 신수 기린이 뒤따라 왔다. 갑자기 일행이 생겨버렸다.


우리는 낡은 문 앞에 모였다. 나, 할아버지, 시족, 기린이었다. 나는 걸어왔고 할아버지는 뛰어왔고 시족은 발이 없음에도 미끄러지는 듯 날아왔으며 기린은 발굽에 하얀 갈기가 있어서 구름이 피어나듯 뛰어왔다.

나는 심호흡을 했다. 모두가 흥분해 있었는데 이유는 달랐다. 나는 약간의 두려움과 설렘이 섞여 있었고 할아버지는 사라진 세계를 탐구한다는 떨림 같은 흥분을 가졌다. 시족은 처음 경험하는 세계에 대한 두려움과 기대에 흥분하였고 기린은 모르지만 그냥 흥분해 있었다.

할아버지가 앞장섰다. 그 뒤를 기린이 따르고 이어서 나와 시족이 따랐다. 할아버지를 만나면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았으나 일단 뒤로 미루었다.

낡은 문을 넘어 입구에 들어서자 조금 떨어진 곳에 작은 정자가 하나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푸른 옷을 입은 젊은 남자가 옛날 사극에서나 나올법한 책을 읽고 있었다. 그러다가 우리를 발견하더니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정자를 뛰어 내려와 신발도 신지 않고 달리듯 우리에게 다가왔다. 너무나 반가운듯한 모습이었다. 우리도 그를 발견하고 그가 오기까지 문 앞에 서 있었다.

그는 우리 앞으로 달려와 서며 약간 흥분한 어투로 말했다.

" 어서 오십시오. 저희 대별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저는 대별국의 입구를 맡고 있는 장상이라고 합니다. "

자신을 장상이라고 소개한 그는 정중하게 인사를 하였다. 그는 푸른 옷을 입고 있었다.

" 반갑소. 저는 동방삭이라 합니다. 그리고 이놈은 제 손주이고 저 아이는 시족인데 제 손주 놈과 인연을 맺은 아이이고 이 녀석은 오색이란 이름을 가진 동물입니다. "

할아버지는 먼저 자신을 소개한 후에 나와 시족, 그리고 기린을 소개했다.

장상은 눈 두 개만 있는 시족을 놀라운 듯 잠시 바라보더니 고개를 돌려 기린을 바라보며 말했다.

" 오... 그러시군요. 오색이란 저 동물은 오색 신수 기린이 아닙니까? 어느 나라에 크신 어른이신가 보군요. 혹 오신 곳을 알려주시면 마땅히 예를 갖추어 영접하겠습니다. "

" 아닙니다. 옛날에는 한자리도 했었지만 지금은 여행이나 다니는 야인입니다. 그러니 편하게 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오색이를 보고 뭔가 오해하신 것 같은데 저놈은 제가 운이 좋아 얻은 놈이니 유념치 마십시오. "

" 하하하. 오색 신수 기린을 운이 좋아서 얻으셨다고요? 어이구 농담도 잘하십니다. 저희 대별국에도 없는 환수인데... 어쨌든 더 밝히기를 싫어하시는 것 같으니 더 이상 여쭙지 않겠습니다. "

" 하하. 배려해 주셔서 고맙군요. 제가 보기보다 나이가 많아서 거추장스러운 건 너무 싫어하니 널리 이해 부탁드립니다. "

" 그러면 간단한 신상만 여쭤보고 안내하겠습니다. 존함과 나이 정도만 알려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혹 그것마저 밝히기를 원치 않으시면 이름만 말해주셔도 됩니다. "

" 그럽시다. 다시 이야기하면 나는 동방삭이고 나이는 너무 많아서 밝히기가 그렇지만... 대별왕님보다 훨씬 많다고 생각하면 되오. 그리고 이놈은 동방명이고 45살입니다. 그리고 여기 시족은 일천하고도 50살이고 기린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겠죠? "


할아버지는 직접 모두를 소개하셨다. 그에 맞춰 장상은 한 명 한 명을 유심히 살폈다.

" 네네. 그 정도면 되겠습니다. 그런데 저분은 진짜 올해 나이가 마흔다섯 살밖에 안 되신 건가요? "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은 할아버지에게 하고 시선은 나를 쳐다봤다. 왠지 그 거짓말 진짜냐라는 듯한 느낌이었다.

" 하하하. 저놈의 갈무리된 영력을 느끼시나 보군요. 제법 많죠? 언뜻 보면 만년은 산 놈 같아 보일 것입니다. "

할아버지도 시선을 내게 돌렸다. 그리고 웃으셨다.

" 그러게요. 내재된 기운이 충분히 만년은 사신 분 같았는데 45살이라니 보통 분이 아닌가 보군요. "

' 뭐냐... 내가 그렇게 겉늙었냐? 50살도 아니고 만년은 산 것 같다니... 나 기분 나빠해야 하는 것 맞지? 응? 그런 거지? '

" 하나만 더 여쭙겠습니다. 저 시족분과 손주님은 결혼 상대자이십니까? "

' 엥? 갑자기 뭔 소리여? 웬 결혼 상대자? '

" 혹시 뭐가 보이십니까? "

" 네. 그러네요. 인연의 끈이 연결돼 있는데 결혼은 하지 않으셨네요? "

나는 뭔 소리냐는 듯 푸른 옷의 장상을 바라봤다. 그리고 말했다.

" 아우... 큰일 날 소리 하지 마세요. 마누라가 들으면 오해하겠습니다. 저는 이미 결혼 한 지 20년이 넘었습니다. "

" 네? 그럴 리가요? 두 분은 혼이 연결되지도 않았는데 무슨 말씀이시죠? "

이쯤 되자 뭔가 장상과 나는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래서 물었다.

" 저기... 뭔가... 장상 님과 저는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에 대해 간단히 말하면 지금은 영혼으로 이곳에 왔지만 몸은 아직 인간계에 있습니다. 죽어서 온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곳에 20대에 결혼한 아내가 있고요. 그리고 시족과 저는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시족이 여성인지 남성인지도 잘 모르고 더더욱 시족과 결혼은 한 적이 없습니다. "

" 정말입니까? 그게 사실입니까? "

갑자기 장상은 흥분하였다. 그러면서 나와 할아버지, 그리고 시족을 번갈아 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는 그가 왜 흥분하는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 하하. 이놈 말이 맞소. 이놈은 아직 인간계에 머무르고 있다오. 금방 죽을 것도 아니고... "

" 아... 이런 경사가! 인간계에서 넘어오는 길이 완전히 막혔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저희가 모르는 길이 있었나 보군요. 저희가 그 길을 다시 찾으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제가 결혼을 해봐서 아는데 혼이 연결된 것이 시족분이어서 오해하였습니다. 제가 말한 결혼은 인간계에서 말하는 남녀의 결혼이 아니라 영과 인간이 하나가 되는 혼인! 곧 혼과 인이 하나 되는 결혼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

" 네? 혼과 인이 하나가 되는 결혼이요? 그게 뭔데요? "

나는 장상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서 물었다. 그런데 대답을 듣기도 전에 할아버지가 장상에게 질문을 다시 던졌다.

" 이런 것을 물어봐도 될는지 모르겠지만 혹시 장상 도령의 안사람이 누구인지 물어봐도 되겠소? "

" 그게 뭐 어렵겠습니까. 아내의 이름은 매일이라고 합니다. 저와 결혼한 사이이지요. "

" 역시! 역시 그렇구려... 그럼. 오늘이도 아시겠군요. "

" 당연하죠. 저희 부부를 맺어준 은인인데 어찌 모르겠습니까? "

나는 속으로 웃었다. 그 이유는 이름이 매일이, 오늘이 란다. 이름이 웃겼다. 그러다 내일이도 나올 것 같았다.

' 어? 그런데 장상이란 이름도 오랜 시간을 뜻하는 것 아닌가? '


" 역시 제대로 찾아온 것이 맞군요. 혹 저희들이 마을에 거하고 싶은데 기거할 만한 곳이 있을까요? "

할아버지는 우리가 머무를 수 있는 곳을 물었다. 이에 장상이 대답했다.

" 그럼요. 원래 손님들을 위한 객방이 마을에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손님들을 보니 예사분들이 아니신 것 같으니 백리부인의 집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분명 반갑게 맞이하여 주실 것입니다. "

" 오... 백리 부인이 이 마을에 살고 계시오? "

" 그럼요. 당연하죠. 박이왕도 마침 함께 거하고 계시니 오늘은 이야기꽃이 필 것 같습니다. "

" 하하. 박이왕까지도 계실줄이야... 그럼. 부탁드리겠소. "